진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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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16 13:5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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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궁의 규모는 동서의 길이가 약700m, 남북의 길이가 115m로서 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고, 아래층에는 약 11.5m높이의 깃발을 세울 수 있을 만큼이나 높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아방궁이 완성되기도 전에 진나라는 멸망하였다.
그리고 수은으로 황하, 양자강 및 바다를 본 떠 만들고 수은을 계속 흐르게 하였으며 천장에는 진주로 아로 새긴 해와 달과 별들이 반짝이게하여 지상의 세계를 그대로 펼쳐보이도록 했다.
설명
시황릉(일명 여산릉...
레포트/기타
진시황은 죽음을 그렇게 피하려 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세살 즉위 할 때부터 자기가 죽어서 들어갈 묘자리를 파고 있었다.
6. 만리장성
한편 통일 천하를 이룬 진시황에게도 계속 부담을 주는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흉노족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곧바로 남산으로 통하는 고가도로를 만들었으며 수위를 건너 함양으로 연결되는 복도도 만들었다. 아울러 고래기름으로 초를 만들어 조명시설도 해놓았다. 진시황이 죽어 시황릉에 매장되게 되자 후궁들도 모조리 생매장되었으며 매장 직후에는 비밀유지를 위하여 능 안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어 매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서 생죽음을 당하도록 하였으며 무덤 위에는 나무를 심어 산처럼 보이도록 위장하였다. 그래서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북쪽 국경에 거대한 장성을 쌓도록 하고 몽염장군에게 30만 병사를 주어 그 임무를 맡도록 했다.
또한 무덤 안에는 진시황을 모시는 시중과 신하 그리고 호위병과 군마 등 수만개의 도용을 배치하였으며 심지어 산채로 끊는 구리물을 뒤집어 씌워 만든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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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죽음을 그렇게 피하려 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세살 즉위 할 때부터 자기가 죽어서 들어갈 묘자리를 파고 있었다.
몽염은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요새를 구축…(drop)
진시황
진시황은 죽음을 그렇게 피하려 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세살 즉위 할 때부터 자기가 죽어서 들어갈 묘자리를 파고 있었다.
또한 내부에는 활을 설치하여 도굴자가 침입할 때는 즉시 자동 발사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시황릉(일명 여산릉)은 높이가 116m, 주위의 길이가 2.5m, 사방이 각각 600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로 무려 70여만 명의 죄수가 동원되어 공사를 했다. 시황릉(일명 여산릉... , 진시황기타레포트 ,
다.
관은 동으로 주조하였으며 무덤 내부는 궁전과 누각 등의 모형과 각종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 채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