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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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9-24 19:5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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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일본)에서는 도쿠가와(德川)막부 말기 미토학(水戶學)의 주창자들과 오하시 도쓰안(大橋訥菴)의 유교문화 입장에서 서구문화 수용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들은 이 문화관념을 그대로 유지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황전개 속에서 명분론적 국제 질서관을 서양·日本(일본)에 그대로 적용시켜 그것을 재확인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여 개항기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이항로의 사상논리인 이기(理氣)·화이(華夷)·인수(人獸)·의이(義利)와 같은 주자학의 도덕적 관념을 가지고는 자국과 국제사회와의 관계는 이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니 화서학파 문인들이 국제세계를 보고 해석하는 유일한 틀은 오로지 오랫동안 믿어왔던 주자학적 존화양이의 문화관념이었다.
화서 이항로는 서양충격에 의한 서구 열강문화를 미개한 이질문화라고 보았다.
그는 호남의 기정진(奇正鎭), 영남의 이진상(李震相)과 더불어 19세기 주리철학(主理哲學)의 3대가(三大家) 가운데 하나로, 공자의 춘추대의(春秋大義)와 맹자의 의리지사(義理之辭)·벽이단(闢異端), 주…(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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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러한 화서학파의 대외인식과 동일하게 고심했던 청나라의 왜인(倭仁)도 주자학적인 입장에서 중화의 전통문화는 서구문화와는 공존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Ⅰ 머리말
Ⅱ
1) 이항로의 생애
2) 이항로의 관직생활
3) 이항로의 학문과 사상
4) 이항로의 근대적 평가
5) 이항로의 저서
6) 이항로의 묘
Ⅲ 맺은말
Ⅳ 느낀점
<참고한 문헌 >
노골적인 외세침략의 위기상황에서 이항로는 이 같은 자국가·자민족·자문화 중심주의의 자주·자존의식으로 현실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문제의식과 시대인식에 따른 민족주의적 실천운동으로 위정척사운동과 화서학파의 항일의병운동이었다. 그에 의하면 서양문화는 지리적으로 중국(China)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인류문화와 도의의 중심인 중국(China)의 문화적인 influence(영향)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이항로 , 이항로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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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로에 대한 글입니다. 동양천지는 이제 서양세력의 등장으로 약육강식이라는 노골적인 힘의 관계에 의한 위기상황이었다. 전통적 가치와 서구문화는 사람과 동물이 다르듯이 서로 나란히 설 수 없고 통할 수도 없다는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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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인문사회
이항로에 대한 글입니다.
19세기 중엽 유교문화권인 한·중·일 동양3국은 비슷한 시대에 서양충격의 외압으로부터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